무슨서점 - 읽단쓰기클럽 2월 모임 1
무슨서점의 읽단쓰기클럽
연남동 끝자락에 있는 무슨서점은 내가 사랑하는 초록색이 가득한, 차분하면서 따뜻한, 매력적인 에세이들이 가득한 책방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이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구입할 책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장님의 손길로 수집된 초록색이 공간 곳곳에 있고, 엄선된 초록색 문구류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독특한 매력.
처음 책방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계속 고민하던 ‘읽단쓰기클럽‘에 드디어 가입했다. 설이 지나고 진짜 2025년 새해가 시작하는 지금 정말 딱 내게 필요했던 시간을 보내고 왔다.
첫 모임
일곱 명의 사람과 두 편의 짧은 글
나와 J를 포함해 총 7명은 클럽장 다다님이 준비한 두 편의 글을 한 문단씩 번걸아가며 읽고 감상을 나누었다. (올해 1월 31일에 동아일보에 실린 고수리 에세이스트의 칼럼 ‘[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오늘은 어떤 실패를 해봤어‘과 브라이언 키링의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의 발췌문)
이 클럽 분위기는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고 이미 알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흥미로웠다. 각기 다른 색을 띠는 이들이 던지는 생각들은 다채롭고, 오며 가며 나누는 대화 사이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문득 많은 것들을 잊고 경직된 채 지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언제부터 이렇게 힘을 주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날 견뎌준 이들에게 미안하고 아주 고맙다.
대화를 마치고 20분 동안 글을 썼다.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며 뇌를 미리 마사지 해두어서인지 걱정과는 달리 글은 술술 써졌다. 솔직한 이들의 모습에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읽단쓴글 : 나는 왜 새해가 시작되는 걸 달가워하지않았을까?
그냥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는 것뿐인데, 어제가 지나고 오늘이 찾아오는 것뿐인데, 왜 ‘해’라는 개념을 갖고 12개월을 주기로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정해둔 건지 못마땅했다. 2024년 마지막 밤엔 울며 잠들었고, 2025년 새해 아침은 부은 얼굴로 눈을 떴기에 작년과 올해의 사이는 더 못마땅했다. 아마도 작년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함에 실패를 감지했고, 새해의 시작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음에 또 다른 실패를 감지한 게 아닐까. 마음에 드는 해를 보내지 못했기에 마지막이 특별하지 않은 기분이 들고, 이 기분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 되었다. 이미 시작부터 망친 기분.
오늘의 글들을 읽고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내가 잊고 있던 중요한 걸 떠올린다. 24년 언젠가에 하루하루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삶을 살고, 이 작은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패턴을 찾아내자고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커다란 하나의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숨부터 탁 막히고, 게다가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이니 매번 망치기만 하는 사람이 된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커다란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작은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고 모으자.
무언가를 하나의 단어로,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려고 할 때 많은 걸 납작하게 만들게 된다. 작고 자잘한 것들을 담아낼 언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쌓이는 순간을 잘 발견하고 기억해 두지 않으면 마지막에 그냥 ‘성공’ 혹은 ‘실패’로, 내 시간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 두 글자를 빌리는 게 아닐까. 작은 순간을 포착하며 기록하는 해를 보내면 올해가 끝나는 12월 31일이, 2026년 1월 1일이 조금은 달가워질지 궁금해진다. 올해 마지막 날 이 글을 다시 열어보자고 미리 달력에 표시해 두어야겠다.
2025년 2월의 문장은 이렇게 정했다. “힘을 빼고 순간을 소중히 하기”. 다다님처럼, 수님이 주신 아이디어를 받아 다이어리 monthly plan 윗부분에 매 달 다른 색 볼펜으로 이 문장을 적어두어야지.